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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dos Han 칼럼] 화이트 하우스, 권력의 집에서 인류의 미래를 묻다

K-Classic News  Erdos Han 작가  |

 

 

워싱턴의 백악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곳은 한 나라의 권력이 머무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수많은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상징이다. 백악관에서 내려지는 하나의 결정은 국경을 넘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어떤 때는 전쟁과 평화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의 크기를 논하는 일보다, 그 권력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일인지 모른다.

 

인류는 오랫동안 강해지기 위해 경쟁해 왔다. 더 큰 영토를 얻기 위해 싸웠고,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국경을 넓혔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현대에도 경쟁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사력과 경제력, 반도체와 인공지능, 우주와 정보기술을 둘러싼 새로운 패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강대국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더 강한 힘을 준비하고, 작은 나라들은 그 사이에서 자신의 생존과 미래를 고민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류는 강해지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강해지는가. 강함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국가가 강한 경제를 만들고, 국민을 지키기 위한 안보 능력을 갖추며,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강함의 목적이다. 자신의 힘을 약자를 보호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를 굴복시키고 더 많은 것을 빼앗는 데 사용할 것인가. 결국 권력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 힘으로 무엇을 지켰는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은 언제나 정의와 안보,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실제 전쟁터에서 상처 입는 것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정치적 결정은 높은 곳에서 내려지지만, 그 결과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과 가정,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에 남는다. 그래서 진정한 지도자는 전쟁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전쟁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중동의 갈등, 한반도의 긴장과 동맹의 문제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상대를 완전히 이기는 것만이 미래인가. 아니면 경쟁하면서도 함께 살아갈 질서를 만드는 것이 더 큰 승리인가. 오늘날 기술은 놀라울 만큼 발전했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빠르게 계산하고,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며,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그러나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한 사람의 눈물,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 미래를 빼앗긴 아이의 두려움은 통계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인간다워져야 한다.

 

그래서 정치에는 경제와 군사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예술과 문화, 음악과 교육이 필요하다. 서로의 언어와 노래를 알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단순한 적으로 보기 어려워진다. 예술은 국경을 넘고, 문화는 적대감을 넘어 마음을 만난다. 총과 미사일이 만들지 못하는 평화의 공간을 그림 한 장과 음악 한 곡이 만들 수도 있다.

 

권력의 집이 진정 위대해지는 순간은 가장 강한 명령을 내릴 때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아 상대의 말을 듣고, 두려움을 증오로 바꾸지 않으며, 경쟁 속에서도 공존의 길을 찾을 때일 것이다. 인류가 지켜야 할 가장 큰 영토는 땅이 아니다. 서로의 마음이다. 강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약한 이를 밟지 말아야 한다.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함께 살아갈 길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눈물을 숫자로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의 나라는 아직 지도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쟁보다 평화를 선택하고, 탐욕보다 공존을 선택하며, 힘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인류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은 강해지기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강해지고 있는가.

 

Artist ERDOS 한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