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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리뷰] '사랑은 정말 묘약일까' 글로리아오페라단, "벨칸토 오페라의 진수를 유쾌하게 되살리다"

"글로리아오페라단, 유려한 선율과 인간적 감동으로 《사랑의 묘약》의 매력을 완성하다"
'사랑은 묘약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글로리아오페라단, 벨칸토 오페라의 순수한 감동을 되살리다

K-Classic News 오형석 기자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가에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다. 로시니와 벨리니와 함께 벨칸토(Bel Canto) 오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그는 아름다운 선율과 인간 감정에 대한 섬세한 통찰, 그리고 뛰어난 극적 감각을 통해 오늘날까지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은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오페라로 손꼽힌다. 1832년 초연 이후 2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의 레퍼토리로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오페라 입문자부터 애호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글로리아오페라단(단장 양수화)의 《사랑의 묘약》은 이러한 작품의 본질을 충실히 구현한 무대였다. 과도한 현대화나 자극적인 재해석보다 음악과 드라마 자체가 지닌 힘에 집중하며 벨칸토 오페라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사랑의 묘약》의 매력은 무엇보다 인간적이라는 점에 있다. 오페라 역사 속 수많은 작품들이 왕과 귀족, 영웅과 비극적 운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반면, 《사랑의 묘약》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네모리노는 가난한 시골 청년이다. 사랑하는 아디나 앞에서 늘 주눅 들고 자신감이 부족하다. 반면 아디나는 아름답고 총명하며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독립적인 여성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오늘날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이라 할 만큼 친숙하다. 여기에 떠돌이 약장수 둘카마라 박사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둘카마라는 사랑의 묘약이라며 사실상 평범한 와인 한 병을 네모리노에게 판매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짓말은 결국 진짜 사랑을 이루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도니체티는 이 단순한 설정을 통해 사랑은 마법이나 기적이 아니라 진심과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유쾌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바로 그 보편성 덕분에 《사랑의 묘약》은 시대를 초월한 생명력을 얻는다.

 

이번 공연 역시 이러한 작품의 본질을 충실히 살려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벨칸토 오페라 특유의 선율미였다.

 

벨칸토는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노래’를 의미한다.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한 음악 양식이다. 도니체티는 《사랑의 묘약》에서 이 벨칸토의 미학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구현해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선율은 친숙하면서도 우아하다.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다. 오히려 누구나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하고 따뜻하다. 주요 아리아는 물론 중창과 합창까지 극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인물들의 감정을 풍부하게 드러낸다.

 

공연의 정점은 단연 네모리노의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었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테너 아리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곡은 네모리노가 아디나의 눈물 속에서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는 순간을 노래한다. 단순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평생 자신감 없이 살아온 한 인간이 처음으로 행복을 꿈꾸는 순간의 감정을 담아낸 음악이다.

 

객석은 자연스럽게 숨을 죽였다. 서정적으로 이어지는 선율과 절제된 감정 표현은 작품 전체의 감동을 응축해 전달했고,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 이어진 박수는 이날 공연의 성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 공연을 1층 객석에서 관람하며 새삼 느낀 것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가진 공간적 완성도였다. 국내 최고의 오페라 전용 극장답게 음향과 시야 모두 뛰어난 수준을 보여주었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감은 적절했고, 성악가들의 표정과 시선, 세밀한 몸짓까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특히 네모리노의 불안한 눈빛과 순수한 설렘, 아디나의 미묘한 감정 변화, 둘카마라의 익살스러운 표정은 가까운 거리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오페라가 단순히 음악만이 아니라 연극과 미술, 무용이 결합된 종합예술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음향 역시 인상적이었다. 오페라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연장의 음향 설계는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이날 공연에서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객석 전체를 자연스럽게 채웠고,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울려 나오는 관현악은 무대를 안정적으로 지탱했다.

 

특히 오케스트라와 성악이 이상적인 균형을 유지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현악기의 부드러운 울림 위로 성악가들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빠른 앙상블 장면에서는 경쾌한 에너지가 살아났다. 반면 서정적인 장면에서는 벨칸토 특유의 우아한 음향미가 충분히 드러났다.

 

연출 또한 작품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살려냈다. 글로리아오페라단은 원작이 가진 희극적 매력을 과장하지도, 무리하게 현대화하지도 않았다. 대신 인물 간의 관계와 이야기의 흐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희극 오페라의 핵심은 웃음이지만, 진정한 웃음은 인물들이 진지할 때 탄생한다. 네모리노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아니라 사랑 앞에서 누구보다 진심인 청년으로 그려졌고, 관객들은 그를 비웃기보다 응원하게 된다. 아디나는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선택하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표현되었다. 둘카마라는 특유의 허풍과 재치를 통해 극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사랑의 묘약》이 왜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 작품은 거대한 비극도, 철학적 담론도 아니다. 대신 사랑과 질투, 설렘과 희망이라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도니체티는 그것을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노래한다.

 

결국 《사랑의 묘약》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을 얻기 위해 묘약을 찾지만 결국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라는 단순한 진실. 도니체티는 그 메시지를 웃음과 눈물, 그리고 벨칸토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 담아냈다.

 

글로리아오페라단의 이번 공연은 그 본질을 충실히 전달한 무대였다. 성악과 오케스트라, 연출과 무대가 조화를 이루며 오페라가 지닌 가장 순수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한편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가득 메운 박수는 단순한 호응이 아니었다. 그것은 200년의 시간을 넘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도니체티 음악에 대한 찬사였으며, 사랑과 인간의 진심을 노래하는 오페라 예술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었다.

 

《사랑의 묘약》은 다시 한번 증명했다. 사랑은 결코 묘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진심이 담긴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오페라가 시대를 넘어 살아남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