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경 리뷰] 옛 연방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콘라트 아데나워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 현장 기록

  • 등록 2026.01.09 02: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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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lassic News 노유경 기자 

[노유경 리뷰]
옛 연방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콘라트 아데나워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 현장 기록
2026년 1월 5일, 독일 본(World Conference Center Bonn)
주최: Konrad-Adenauer-Stiftung · Stiftung Bundeskanzler-Adenauer-Haus

 

2026년 1월 5일, 독일 본(Bonn). 오늘날 세계컨퍼런스센터 본(World Conference Center Bonn)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한때 서독 연방의회 본 Bonn 회의장이었던 장소로, 독일 현대 정치의 결정들이 실제로 발화되고 제도화되던 공간이다. 입법 기능은 사라졌지만, 반원형 좌석 구조와 단(壇)의 배치는 여전히 정치가 ‘보여지고 들려지던 방식’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있다.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탄생 150주년을 여는 이날의 공식 기념행사가 이 공간에서 열렸다는 사실은, 단순한 장소 선택을 넘어 기억과 현재를 연결하려는 의도적 제스처로 읽힌다.


 

 

행사에 앞서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사전 리셉션은 이 기념행사의 성격을 미리 드러내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로비에는 스프 코너와 간단한 빵, 케이크, 커피와 차가 준비되어 있었고, 참석자들은 이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 시간은 공식적인 네트워킹을 위한 장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직위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잠시 머물며 공기를 공유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정치적 기념행사가 시작되기 전, 말 그대로 ‘사람’이 먼저 모이는 시간이었고, 정해진 시간이 되자 안내에 따라 모두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면서 공간의 성격은 다시 공적인 집중 상태로 전환되었다.

 

회의장 내부는 의도적으로 절제되어 있었다. 대형 무대 장치나 감정을 고조시키는 시각적 연출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연단과 좌석 사이의 물리적 거리 또한 비교적 가까웠다. 이는 정치적 메시지를 외형으로 강조하기보다, 말과 구조 자체가 의미를 전달하도록 설계된 공간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곳이 과거 서독 연방의회 본회의장이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역사적 정보에 그치지 않고, 오늘의 행사 진행 방식에도 하나의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행사는 연방총리–아데나워하우스 재단 이사장 슈테판 페스퍼(Stefan Vesper)의 개회 및 환영 인사로 시작되었다. 그는 2026년을 ‘아데나워의 해(Adenauer-Jahr)’로 명명하며, 향후 1년간 이어질 학술·교육·시민 프로그램의 방향을 간략히 소개했다. 이 인사말은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강조하기보다는, 기념이라는 행위 자체를 장기적인 시민 교육의 일부로 위치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 기념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과 축적을 통해 사회적 기억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인식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 대목이었다.


 

 

이어 축사에 나선 인물은 NRW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실장 나타나엘 림린스키(Nathanael Liminski)였다. 그는 연방·유럽·국제 문제를 담당하는 주정부 책임자의 입장에서, 아데나워가 연방 차원의 정치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주(州) 정치의 제도적 토대 형성에도 깊이 관여했던 인물임을 상기시켰다. 그의 발언은 현재의 정치 현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제도와 책임, 그리고 연속성이라는 개념을 반복적으로 호출했다. 이는 아데나워를 과거의 인물로 고정시키기보다, 현재의 정치적 판단이 놓여 있는 구조적 맥락 속으로 다시 불러오는 방식에 가까웠다. 기념 강연은 전 독일 연방하원의장 노르베르트 람메르트(Norbert Lammert)가 맡았다. 강연의 제목인 “Wir wählen die Freiheit(우리는 자유를 선택한다)”는 이날 행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었다. 람메르트는 아데나워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몇 가지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정치적 판단을 분석했다. 특히 통일보다 자유를 우선했던 결정, 서방 통합과 유럽 협력에 대한 선택이 당시에도 결코 자명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그 선택들이 장기적으로 독일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국제적 위치를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설명했다. 강연의 어조는 평가보다는 분석에 가까웠고, 아데나워의 결정을 도덕적 정답으로 제시하기보다 정치적 위험을 감수한 선택으로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강연 이후 이어진 대담은 유럽의회 외교위원장 데이비드 맥앨리스터(David McAllister)와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청년이사회 대표들이 참여한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사회는 언론인 산드라 바흘레(Sandra Wahle)가 맡았다. 이 대담에서 주목할 만했던 점은, 아데나워의유산을 과거의 성취로 정리하기보다 오늘날 유럽이 직면한 문제—민주주의의 취약성, 국제 질서의 불안정, 가치 외교의 한계—와 연결해 질문을 던졌다는 점이다. 청년 대표들은단순한 청중이나 상징적 참여자에 머물지 않고, 현재 세대의 시각에서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직접 발화했다. 이는 기념행사가 세대 간 전승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행사의 말미에는 베티나 아데나워 (Bettina Adenauer)가 단상에 올랐다. 그녀는 연방총리–아데나워하우스 재단(Stiftung Bundeskanzler-Adenauer-Haus) 이사회부의장으로 소개되었으며, 동시에 콘라트 아데나워의 손녀로서 발언했다. 그녀의 짧은 발언은 정치적 평가나 역사적 해석이 아니라,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개인적인 기억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국가와 제도, 선택과 책임이라는 공적 언어로 이어지던 이날의 담론은 이 순간, 한 인간의 일상적 모습과 사적인 시간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베티나 아데나워가 회상한 아데나워는 ‘독일의 초대 연방총리’이기 이전에, 가족 안에서 침묵과 습관, 반복되는 일상 속에 존재하던 한 노인이었다. 이 발언은 아데나워를 다시 위인으로 소환하기보다, 공적 선택의 무게가 결국은 한 개인의 삶과 시간 위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치적 기념행사에서 드물게 등장하는 이러한 사적 기억의 층위는, 이날 행사가 유지해 온 절제된 톤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역사와 현재 사이에 놓인 인간적 거리감을 잠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배치된 음악 연주는 정치적 담론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면서도, 그 자체로 별도의 ‘공연’으로 분리되기보다는 행사 전체의 어조와 기억의 층위를 조용히 조직하는 방식으로 기능했다. 이날 연주된 레퍼토리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피아노 사중주 내림마장조 Op.16 제1악장 ‘Grave – Allegro ma non troppo’, 요제프 하이든(Joseph Haydn)의 현악 사중주 C장조 Op.76-3 ‘황제(Kaiser)’ 제2악장(주제와 변주)의 피아노 사중주편곡, 그리고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피아노 사중주 A단조(A minor) 악장(Quartet movement)’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하이든 ‘황제’ 2악장의 주제 선율은 훗날 ‘독일인의 노래(Das Lied der Deutschen, Deutschlandlied)’의 선율로 차용되어 오늘날 독일 국가(통상 3절)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독일 국가3절의 핵심 구절인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즉 “통일과 정의와 자유”라는 문구는 이날 행사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된 ‘자유’라는 가치어와 선율의 차원에서 겹쳐 들리며, 음악을 단순한 분위기 전환의 도구가 아니라 공적 언어의 한 형태로 기능하게 만든다. 동시에 이 선율이 본래 1797년 하이든이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를 위해 작곡한 황제 찬가(“Gott erhalte Franz den Kaiser”)였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리면, 자유를 말하는 강연 사이에 국가적 상징성을 지닌 선율—그리고 그 군주제적 기원—이 놓였다는 배치는 독일 정치사가 거쳐 온 제도적 변환과 기억의 층위를 음악적으로 환기하는 장치로 읽힌다. 여기에 말러의 a단조 악장이 더해지면서 고전주의적 균형에서 세기말적 불안과 밀도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어법으로 시선이 이동하고, 음악은 결론을 봉합하기보다 기념의 언어가 미처 설명하지 못하는 긴장과 여백을 남긴다. 또한 이 모든 연주가 별도의 곡 해설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은, 음악이 설명되는 대상이 아니라 행사 내부에서 직접 작동하는 또 하나의 공적 언어로 취급되었음을 시사한다.

 

“Wir wählen die Freiheit(우리는 자유를 선택한다)”라는 문장은 역사적 수사에 머물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질문으로 다시 다가왔다. 자유는 이미 확보된 상태로 유지되는 가치라기보다, 정치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되고 재확인되어야 하는 조건이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특정 국가나 특정 정권의 사례를 직접 소환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성립한다. 자유와 인권은 선언의 차원에서는 보편적 가치로 제시되지만, 실제로는 제도와 정책, 국제관계의 선택 속에서 구체화되며, 그 과정에서 어떤 언어로 규정되고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를 선택한다”는 문장은 감동적인 표어로 소비되기보다, 어떤 자유를 누구의 자유로 정의하고, 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감수하며, 무엇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합의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읽혀야 한다. 아데나워가 처했던 냉전 초기의 조건과 오늘날의 국제 질서는 동일하지않지만, ‘어떤 자유를, 어떤 비용을 감수하며 선택할 것인가’라는 물음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며, 그 물음은 정치 지도자에게만이 아니라 학자와 예술가, 교육자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진다.
 

 

이날 기념행사를 지켜보며 인상 깊었던 점은, 독일 사회가 아데나워를 기념하는 방식이 찬양이나 도덕적 확신의 제시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연설과 대담, 음악과 공간은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하기보다 질문을 남기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념은 과거를 확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었다. 옛 연방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이 기념행사는, 아데나워라는 인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무대라기보다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개념이 오늘날 어떤 조건과 책임을요구하는지를 조용히 환기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조용함 속에서, 자유는 여전히 선택의 문제로 남아 있었다.

 

오늘날 쾰른 본 공항은 공식 명칭으로 콘라트 아데나워 공항(Flughafen Köln/Bonn – Konrad Adenauer)이라 불린다. 이곳에서는 매일 수많은 비행기가 유럽 안팎으로 이착륙하며, 사람들은 특별한 의식 없이 국경을 넘고 돌아온다. 정치사 교과서 속 인물로서의 아데나워가 아니라, 그의 이름이 지명과 교통 인프라에 새겨진 채 현재진행형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념행사보다 오히려 이 공항의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더 분명하게 체감된다. 자유로운 이동, 국경을 전제로 하되 그것을 넘나드는 체계, 그리고 그 체계가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감각은 아데나워가 선택했던 전후 독일의 방향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아데나워는 쾰른에서 태어났다. 쾰른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를 가리켜 ‘쾰쉬 융(Kölsche Jung)’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에는 특정한 영웅성이나 위대함보다는, 지역에 뿌리내린 일상성과 소속감, 말투와 습관, 태도의 총합이 배어 있다. 아데나워를 ‘독일의 초대 연방총리’로만 기억하는 시선과 달리, 그를 먼저 ‘쾰른의 아들’로 불러보는 이 지역적 명명은 정치적 선택이 언제나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옛 연방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150주년 기념행사는 과거를 기념하는 자리였지만, 아데나워의 이름은 이미 기념의 영역을 넘어 일상의 구조 속에깊이 들어와 있다. 연설과 음악, 그리고 ‘자유’라는 반복되는 단어를 뒤로하고 공항이라는 공간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유는 연단 위에서 선언되는 순간보다, 사람들이 아무 설명 없이 이동하고 돌아오는 그 반복 속에서 더 실감나게 작동한다. 콘라트 아데나워라는 이름은 그렇게 역사적 인물에서 도시의 언어와 공항의 명칭으로, 다시 말해 현재의 생활 세계 속으로 계속해서 번역되고 있었다.
 

 

글 | 노유경 Dr. Yookyung Nho-von Blumröder
음악학 박사, 쾰른대학교 출강
해금앙상블 K-YUL 음악감독 겸 단장
ynhovon1@uni-koeln.de Instagram: hangulmanse · kyul-germany
 

노유경 평론가 atonal15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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