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출연: 카운터 테너 이희상, 가야금 이혜정, 피아노 이민경, 댄스 황유성, 김은혜
<레퍼토리>
꽃, 별 / 그리움/ 님이여 / 현음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노래>
소프라노 변지영, 피아노 김민경
소녀는 어느새 커버렸네 (이익선 시)
자전거 (김계영 시)
화성의 달 (서기석 시)
나비 (이길원 시) (댄스: 황유성 김은혜)

Q: 학교 울타리(수원대)를 벗어나셨으니 창작 제3기라고나 할까요? 근황이 어떠신지요?
학교라는 제도적 울타리를 벗어난 것은 단지 직장으로서의 은퇴일 뿐, 작곡가로서의 여정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음악은 생의 숨결과도 같기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작곡은 계속될 것입니다. 현재는 주요 작품인 <십이지>와 <아라리> 시리즈를 중심으로 수정과 보완 작업을 진행하며, 그동안의 음악적 궤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칸타타, 교향시, 오페라 등 대규모 형식의 신작 구상에도 몰두하고 있지요.
무엇보다도 한국적 정서와 현대적 감각이 조화된 새로운 음악 세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전통악기와 서양악기의 소리를 교차시키며, 언어 이전의 감정과 기억을 탐색하고, 그것을 현대적 음악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몰입해 있습니다.
Q: 작곡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예술성이란 어떤 것인가요? 그 과정에 주요 변화를 듣고 싶군요.
저에게 작곡은 무한히 존재하는 소리의 재료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고 부여하는 창조 행위입니다. 그 선택의 과정 자체가 이미 예술의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프랑스 유학 전후로 제 음악적 시선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유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만프레드 켈켈 선생님은 제게 한국음악과 동양음악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때 비로소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정작 한국음악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 후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음악, 그리고 서양의 중세·르네상스 음악까지 두루 탐구하며 폭넓은 시야를 넓혔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제 음악적 재료선택과 미학적 감수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또 유학 시절 ‘객석’ 잡지의 프랑스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공연을 접한 경험은 제 작품의 다양성과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Q: 누구나 개성적인 작품, 작곡가의 정체성을 생각하는데, 작곡가가 추구하는 어떤 특별한 것이 있나요?
저는 음악이 지닌 본질적인 ‘침묵의 힘’에 주목합니다. 화려한 기교나 극단적인 실험보다는, 한 음이 머무는 시간과 그 여운 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탐색합니다. 감정의 절제 속에서 발현되는 진정성, 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음악적 미학의 핵심입니다.
현대음악은 일반 청중에게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저는 구조는 정교하되 청중이 느끼기엔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악을 지향합니다. 작품의 주제나 제목에 친숙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도 그러한 소통의 연장선입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경계의 해체 속에서 새로운 음악 언어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제 음악의 방향입니다.
Q: 개인적으로 저와는 <도깨비동물원>과 여러 편의 가곡을 썼는데, 본인의 가곡 작품들과 세계를 좀 설명해 주세요. 또 이번에 출품하는 작품들은 어떤 작품인지요?
가족오페라 <도깨비동물원>은 독일 베를린 초연 이후 여러 무대에서 재공연되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가곡으로는 <송인>, <동짓달 기나긴 밤>, <신뱃노래>, <방랑서시>, <주막>, <쇠제비 갈매기의 꿈> 등이 있으며, 합창곡 <아! 숭례문아>, <작은 영웅의 노래>, <쓰리쾌남> 등도 자주 연주되길 바랍니다.
제 가곡은 선율적으로 간결하지만, 화성적으로 색채감이 풍부하고, 대위적인 복선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하는 여덟 작품 역시 이러한 음악적 특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중 카운터테너와 가야금을 위한 <이청산 시에 붙인 네 개의 노래>는 지난 9월 미국에서 소프라노 버전으로 초연되어, 시와 노래, 가야금이 하나의 그림처럼 조화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카운터테너 버전으로 새로운 음색의 조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신작 <소녀는 어느새 커버렸네>, <화성의 달>, <자전거>, <나비> 는 각기 다른 시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입니다. 인간의 성장, 생기, 그리움 등 다양한 정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나비> 에서는 제가 직접 룸바춤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입니다.
Q: 최근 몇 년간 해외 연주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2023년 불가리아 소피아뮤직위크에서 <십이지> 중 일부가 유럽 초연되었고, 같은 해 중국에서는 제 음악세계를 주제로 한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2024년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Teatro Niccolini에서 <왈츠풍류>가, 2025년에는 그리스 포르토첼리 페스티벌(Porto Celli Festival)에서 <화성의 달>이 초연되었습니다. 또 올해 9월, 미국 미네소타의 St. Olaf College에서 열린 Korean Composers Festival에서는 소프라노와 가야금을 위한 <이청산 시에 붙인 네 개의 노래>가 세계 초연되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Q: 창작자들이 유통, 홍보, 마케팅에 힘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정책 요구나 제안, 아이디어가 있으면 주세요.
현재의 예술 생태계는 여전히 ‘창작’과 ‘유통’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작곡가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작품의 기록, 홍보, 유통을 모두 병행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창작자가 창작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 매니지먼트 시스템과 공공 지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플랫폼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예술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화적 자산이기에, 창작의 가치가 보다 널리 확산할 수 있는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간략한 작품 연보와 프로필 10줄을 주세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서 김성태(학사), 강석희 교수(석사)에게 사사하였고, 프랑스 소르본대학교에서 만프레드 켈켈 교수의 지도 아래 「다뤼스 미요의 발레음악에 관한 분석·비평적 연구」로 음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귀국 후 수원대학교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며 다수의 국내외 음악제에 초청받아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두 편의 가족오페라 <도깨비동물원>과 <며느리방귀 복방귀>, 그리고 <십이지>와 <아라리> 시리즈가 있으며, 피아노 모음곡 <십이지>는 대한민국 작곡상을 받았습니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대편성 국악 칸타타 <일향악세계기>와 <종묘제례악>을 발표하였고, 한국적 요소와 서양적 어법을 조화시킨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제 음악은 일상적 소재를 예술의 언어로 승화시키며, 전통의 정신을 현대적 감각으로 이어가는 여정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