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밥세(노래로 밥을 먹는 세상) (1곡) 흙수저라고?

  • 등록 2025.07.15 18: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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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흙수저라고?

 

흙, 흙, 흙, 너희가 흙을 아느냐?
흙은 목숨의 젓줄, 흙에서 밥이 나오고,
흙에서 생명이 자라고,
너의 집과 가문의 족보가 여기서 온 것 아니냐?

 

누가 흙수저, 금수저라고 경계를 만들어 비웃는거냐?
좀 살만하다고 흙을 그렇게 비아냥 거려도 되는 거냐!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밭고랑에서
땀 흘려 농사지어 오늘을 만들었는데
금수저, 흙수저 계급을 만들어
갈등으로 갈라치기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앞으론 우리부터 '흙수저'란 말 쓰지 맙시다
안그렇습니까? 여러분(대화체)

 

흙의 손은 위대하다.
흙을 노래하자. 흙을 경배하자.
하늘과 맞닿은 곳 땅. 그 넓은 대지의 흙이 땅이 아니던가

 

내가 영원히 잠드는 곳,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인생이란다

 

그러니 신성한 수저에 흙을 뭍히지 마라,
흙수저는 없다, 모독을 받아야 할 흙은 없다,

너의 욕심, 황금에 먼 눈이 흙을 미워한것이냐?

 

아니다. 거꾸로 흙이 너를 지킨다.

흙의 자손, 아들 딸이니
대지의 넉넉한 품을 믿고 굿굿하게 서거라.
생명의 근원, 흙을 믿어라

 

그러니 다시는
수저에 흙을 뭍히지 말아다오

 

날아라 흙
빛나라 흙
금수저 보다
건강한 흙
흙의 찬가를 부르세!!

 

詩評: ‘흙수저’의 반전, 생명의 찬가로 승화된 시적 고발

 

탁계석 시인의 가곡 가사 「흙의 찬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깊게 각인된 ‘수저 계급론’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흙'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고 그것에 대한 신성성을 찬미하는 역설적 서사로 읽힌다.

 

이 시는 단순한 사회비판을 넘어서 존재론적 전복을 시도한다. "흙, 흙, 흙, 너희가 흙을 아느냐?"라는 서두의 강렬한 삼중 반복은 독자에게 ‘흙’이라는 낱말에 내재된 생명성과 근원성, 그리고 그 역사적 무게를 일깨운다. 이어지는 구절들 — "흙은 목숨의 젓줄", "흙에서 밥이 나오고 생명이 자라고" — 는 흙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생명의 모태이자 조상들의 역사적 터전임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흙수저’라는 멸칭을 해체하고, 이를 찬가의 제목으로 역설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 과정을 통해 사회적 갈등과 계급 분열을 조장하는 언어의 위선을 고발하고, 모든 생명이 흙에서 비롯되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근원적 진리를 환기시킨다. 이것은 단순한 민중의 정당화가 아닌, 존엄한 자연철학적 인식이다. 시인은 말한다. “신성한 수저에 흙을 묻히지 마라. 흙수저는 없다.” 이 구절은 인간의 언어가 오염시킨 자연에 대한 반성문이며, 동시에 새로운 가치 회복의 선언이다.

 

또한 마지막 연들은 마치 주술적 찬가처럼 반복과 강조를 통해 음률적 고양을 이루며, 노래로 불리기에 적합한 리듬과 구조를 가진다:
“날아라 흙 / 빛나라 흙 / 금수저보다 / 건강한 흙 / 흙의 찬가를 부르세!!”
이는 집단적 각성과 공동체적 희망을 촉구하는 결말로, 단순히 비판에 그치지 않고 회복과 찬미의 정신으로 마무리된다.

 

총체적으로 이 가사는, 흙을 통한 민중의 존엄 회복,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화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품고 있다. 비극적 현실을 통과하여 예술로 치유하고 노래하는 서사,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흙의 언어'가 아닐까. 이 시는 곧 노래가 되어, 땅을 딛고 사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묵직한 위로와 감동을 건넬 것이다.
 

 

탁계석 회장 기자 musict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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