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계석 리뷰 ] 봄의 향연, 그 풍족한 정성의 즐거움

  • 등록 2025.05.21 0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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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을 나누는 행위는 가치의 최상급!

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좌에서~)  최윤진, 정덕기, 문영순 작곡가 

 

그러니까 외식산업이라는 게 발달하지 않았던 7, 80년대 사람들은 손님을 가정에 초대했다. 초대 손님을 위한 상차림은 주부의 몫이었고, 준비하는 것에 땀을 흘려야만 했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어떤 상차림을 할 것인가? 어떤 옷을 입을까? 오랜 추억 속엔 없는 그릇을 빌려야 했던 기억도 아스라하게 남아 있다.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모신다는 것은 이처럼 장소를 불문하고 힘든 작업이다. 더욱이 공공의 장소에서라면  그 힘은 배가 된다.

 

'봄의 향연',  정덕기, 최윤진, 문영순 작곡가의 작품을 보면서 그 상차림이  옛날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이들의 상차림은 정성이었다. 관객들에게 맛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 것이다. 서정의 나물반찬에 각자가 자작 시를 쓰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명시들을 고루고, 여기에 파격의 말들을 끌어 들여 메뉴가 상식을 뒤 엎는 상쾌함도 있었다.  압권은 '액면가' 같은 일반 가곡에서 도저히 다룰 수 없는 심리극의 곡, 필자의 김치로 맛깔을 더한 것은 이번 가곡의 메뉴가 손님들에게 잘 소통했다는 점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정덕기 작곡가의 개인 작품 발표회가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상차림을 한 점이다. 그러면서 정 작곡가는 대학 시절 김대현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아무리 큰 물방울이라도 결코 그 자체로 시내가 될 수 없다' 는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즉 혼자 독불 장군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없진 않으나 민들레 꽃씨처럼 씨를 날리고 뿌리 내리게 하는  전파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번 발표회에 담았다고 했다. 

 

제자로 함께한 최윤진 작곡가, 문영순 작곡가들의 작품이 또 새로운 관객을 모이게 하는 군집력을 갖는 것으로 이는 작곡가의 제 2의 변신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작곡가는 다작으로 유명하다. 날마다 작곡? 오늘도 작곡? 영감의 샘이 마르지 않는 슈베르트과 작곡가다.  실제로 그를 슈베르트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슈베르트는 35살의 짧은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작품 자체에서 다양한 폭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덕기 작곡가는 슈베르트의 두 배의 삶을 살고 있다. 잘하면 3배 가까이 갈수도 있을 것 같다(ㅎㅎ~). 그렇게 되면 세계 가곡사에 특이함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말러를 넘어서 한국의 독특한 말과 세종 한글 시대에 세계를 향한 도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서정성, 코믹을 넘어 또 하나의 발명적 노래 어법, 특이한 캐릭터의 작품들을 만들면서 우리나라 작곡가 중 가장 폭넓은 작품성을 갖는 작곡가가 될 것이란 기대다.

 

최윤진 작곡가의 작품, 문영순 작품에서 자작시를 쓰는 것과 기교적으로 소박한 내면을 표출한 것,  유명 시인들을 찾아 나선 과정들에서 정성을 보았다. 그래서 청중에게 편하고 깊이 파고드는 호소력을 보여줬다.

 

소프라노 김정연, 서활란, 테너 김동원, 바리톤 송기창, 피아노 백설, 김민정. 이들이 가곡에 대한 해석과 가곡의 맛을 어떻게 우려내는지에 대한 또 하나의 설명이었다. 시인들도 다양한 등장이다. 전문 시인뿐만 아니라 민서현, 정수은, 이명숙, 나태주, 이해인, 이정용, 한상완, 노유섭, 김용택, 배임호, 윤준경, 석희구,  탁계석, 큰 물방울도 있지만 작은 물방울, 이슬 같은 섬세한 시들이 모여서 가곡이라는 강을 만들고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가곡의 위기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가곡이 이번 세대에 끊길 것이라고 말하는 걱정이 있지만, 이같은 노력이 있는 한 가곡의 강은 멈추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면,  행복은 과연 어디서 찾을 것인가?  창조성의 텃밭이 없이 소비나 소유만으로 인생이 만족스럽다면 어떻게 되는가?  아니다. 끝없이 베풀고, 나누는 초대 만찬에서부터 인생은 다양해지고 기름진 세상이 된다. '봄의 향연' 을 보면서 봄날이 간다처럼 언젠가 우리의 봄도 먼 기억속에 머물 것이다. 그래도 이 비 오는 날, 계절의 축복을 충분히 느꼈다.

 

모처럼 맛있게 먹고, 맛있게 즐긴 것 같다. 하나 아쉬운 것은 코로나 이후 영업시간 단축으로 제 2의 뒤풀이 장소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지만, 더 마음 깊이, 영혼속에 가곡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것 같아 흡족했다. 정성을 다한 세 분 작곡가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그 초대가 다시 기다려 진다.

 

 

탁계석 회장 기자 musict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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