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lassic News 탁계석 회장 |
과거로부터 미래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아카이브'
스포츠는 기록을 생명처럼 여긴다. 1초, 1미터의 차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그 기록 하나로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 기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순간을 증명하는 증거다. 문화예술은 더욱 그렇다. 하나의 창작, 하나의 연주는 시대를 뒤흔들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문화 기록 인프라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공연이 끝난 무대, 작품이 완성된 이후를 이어줄 기억의 집이 부재한 것이다.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박물관과 기념관을 통해 기억을 모으고, 미래를 준비해왔다. 미국은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중심으로 음악, 무용, 연극, 대중예술까지 모든 예술 기록을 집대성했다. 하나의 작품, 하나의 공연이 지나간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보존하고 연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프랑스는 국립음악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 Département de la Musique)을 통해 수백 년에 걸친 작곡가와 연주자의 악보, 음원, 편지, 사진을 수집하고 관리한다. 이는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을 풍성하게 이해하기 위한 거대한 지식 인프라다.
기억을 모으는 힘이 곧 문화의 생명력을 결정한다
기념관은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니다. 인간의 문화와 감정을 압축하여 다음 세대에 전하는 강력한 지식자산이다.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로부터 미래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아카이브'로서 기능한다. 양적인 수집에 머물지 않고, 질적 승화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기록의 가치다.
"예술의 생명은 무대가 아니라, 기억과 기록 속에 살아 숨 쉰다." 공연은 끝나면 사라지지만, 기록은 다시 꺼내어 울릴 수 있다. 음반, 영상, 악보, 스케치, 메모 — 이 모든 작은 조각들이 모여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예술은 기록을 통해 세대를 넘어 울리고, 새로운 창작의 씨앗이 된다.
지금 이 순간도 무수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는다면, 이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한 번 무대에서 사라진 예술은, 아무리 뜨거웠던 감동이라 해도 시간 속으로 가볍게 흩어지고 만다.
기념관은 예술을 무한히 살아 있게 한다. 기록 없는 문화는 한 세대의 기억과 함께 사라질 뿐이다. 기억을 모으는 힘이 곧 문화의 생명력을 결정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찬란한 무대를 넘어, 그 찬란함을 길이 새길 수 있는 기록의 집을 세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