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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학의 문화노트]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 - 앤디 워홀 (Andy Warhol)

 

예술의 역사는 전통적 예술에 반역한 자가 승리하면 새로운 예술이 되며, 이 새로움 역시 곧 또 다른 반역을 맞게 되는 숙명을 가진 역사로 쓰여 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잘 시사해 주는 이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이다. 

 

그는 조형물에 블랙 유머를 곁들여 전시장 자체를 하나의 공연장으로 만들어 버리기로 유명한 현대 예술가이다. 이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첫 개인전이 현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을 찾고 있는 한국의 관객 반응 역시 그 열기가 뜨겁다. 이런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혹여 카텔란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다음 그의 2019년 작 《코미디언》은 작가와 작품명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고 본적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예술가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덕 테이프로 벽에 붙인 작품으로 120,000달러에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행위 예술작가가 퍼포먼스로써 전시된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려 어쩔 수 없이 새 바나나로 교체되는 등 숱한 논란을 초래하며 미술계에서 작품의 가치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로 인해 그는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게으르고 부유한 작가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카텔란은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을 판단하고 작품의 미적,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기존의 제도권 미술계나 미술 시장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우리가 평소 생각지 못한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블랙 유머 가득한 풍자적 접근은 예술계의 장난꾸러기라 불릴 정도로 유쾌하면서도 때론 곤혹스러울 정도이지만 카텔란은 스스로 자신을 ‘미술계 침입자’라 말한다. 기존 가치체계를 균열시키는 그의 작품은 여느 현대미술 작품과 달리 어렵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중적으로 화제를 모으며 인기 많은 작가 중 하나인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음의 카텔란의 작품 《Him, 2001》을 뒤쪽에서 바라보면 체격이 왜소한 한 소년이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무릎 꿇고 경건히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이지만 조형물 앞쪽의 얼굴은 악의 상징인 히틀러의 얼굴로 만들어 감상자에게 인간의 양면성을 충격적으로 드러내며 반전을 꾀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201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719만 달러 한화로 약 200억이 넘는 금액의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이다. 다시 한번 카텔란이 블랙 유머를 통해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게으르고 가장 부유한 작가로 등극해 있는 점이 확인된다. 

 

다음의 작품은 2010년 밀라노시의 요청으로 밀라노 증권거래소 앞 아파리 광장에 조성한 11m 크기의 《L.O.V.E》라는 거대한 인간의 손을 형상화한 조형물인데, 중지만 남기고 다른 손가락은 잘린 형태이며, 중지를 제외한 다른 손가락이 접혀 있지 않아 어떻게 보면 손가락 욕 같지도 않으면서도 때론 손가락 욕 같은 느낌이 드는 그의 발칙한 상상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그의 유쾌한 사회 고발적 이슈를 담은 이 작품은 작품 의뢰를 받을 당시 이탈리아는 남유럽 발 재정위기로 인해 경제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였다.  카텔란의 작품 제목 L.O.V.E는 이탈리아어로 자유(Libertà), 증오(Odio), 복수(Vendetta), 영원(Etenità)을 뜻한다. 그는 손가락 욕을 통해 자본주의가 갖는 속성을 통쾌하고 유쾌한 방식으로 고발하며 사회적 메시지를 유쾌한 블랙 유머로 전달한 것이다. 

 

카텔란의 이런 발칙한 상상력도 평가받아야 하지만 그의 발칙한 상상력을 수용한 밀라노시 당국이나 밀라노 증권거래소의 예술에 관해 열린 시각 또한 우리 사회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발칙한 상상력은 여의도 증권거래소에는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우리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기에 그들의 예술에 관한 폭넓은 사고가 살짝 부럽다. 이처럼 카텔란의 유쾌한 반란처럼 예술의 역사를 크게 바꾼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전통에 관한 반역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기존의 것에 반역을 시도했다는 점 하나만으로 새로운 예술로 등극하지는 않는다. 그 반역이 되도록 많은 이에게 공감을 이룰 때, 즉 선택받을 때 비로소 예술로 등극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요즘 시대로 생각해 보자면 과거 예술 또한 당대 가장 많은 구독자 수와 조회 수를 기록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지금의 인기 유튜버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 할 수 있다. 물론 음악으로 생각해 보자면 역주행 히트곡들도 물론 있지만, 그 경우가 매우 희박한지라 단순히 몇 가지의 경우를 일반화해 말하기는 곤란하다. 

 

즉 미술에서도 고흐처럼 당대에는 인기가 없어 배고팠던 화가도 있지만,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루벤스나 렘브란트처럼 당대에도 소득세 납부 1위이었던 화가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많다는 점에서 볼 때 예술은 당대 선택받아 수 세기 동안 갖은 비판에도 살아남은 것에 예술이란 이름을 허락받는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현대미술의 큰 흐름인 개념 미술의 난해함과 모호함을 블랙 유머로 한 방에 날려버린 카텔란의 유쾌한 반란이 수 세기 동안 갖은 비판에도 살아남으면 후대엔 현대미술의 전통적 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비로소 예술이란 이름을 허락받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가의 작업 결과가 예술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단계를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현대 예술의 감상법에 있어 중요한 팁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난해하고 모호한 개념 미술 작품 앞에 선 자신이 막막함과 함께 이해가 안 될 때, 자신을 탓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을 사전 학습하거나 큐레이터의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공감이 안 되면 되도록 공감해 보려는 자세는 좋은 태도이긴 하지만, 현대 예술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꼭 공감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거나 작품을 이해하는 척할 필요 또한 없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현대 예술 이전의 20세기 이전의 고전 예술은 수 세기 동안 비판에도 살아남은 것이라 대부분 사전 지식이 없어도 공감이 가는 것들이 많다. 18세기 빈 고전주의 시대를 이끌었던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의 시대에도 작곡가는 수천 명을 헤아릴 정도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수많은 작곡가나 작품이 사라지고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을 교과서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작품이 당대 최고의 구독자 수와 조회 수를 달성한 작품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이 작곡했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작품이 예술로 평가받지는 못한다는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1637년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 근처의 산 카시아노 교구에 들어선 산 카시아노 극장(Teatro San Cassiano)은 유료 입장권을 세계 최초로 발매하며 이전과 다르게 신분과 관계없이 돈을 내면 누구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를 낳게 된다. 이런 유료 입장권 문화 이후로 예술이란 이름은 당대 제도권 문화인 예술 아카데미의 판단과 함께 늘 대중들의 선택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그 가치와 지위를 보장받아 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보면 예술은 이제껏 대중들의 선택, 즉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예술의 역사는 상당 부분 대중들의 선택으로 쓰여 오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가들이나 미학자들이 현대 예술이 갖는 특징인 난해하고 모호하며 정신적이고 개념적인 것들 위주로만 예술을 설명하거나 이야기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은 예술을 더욱 멀리하게 되고, 전시장이나 공연장을 찾지 않게 되며 결국 그 폐해는 예술가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순수 현대 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예술을 어렵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 블랙 유머는 매우 유쾌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그가 전달하고 싶은 사회적 이슈와 메시지를 예술적으로 끄집어내 우리에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낸다. 지금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부유한 카텔란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했다. 카텔란은 1960년 이탈리아 파도바(Padova)에서 청소부인 어머니와 트럭 운전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는 청소년기에 학교 친구 아버지의 조언으로 무선 공학에 대한 열정을 키우며 오래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분해하고 재조립함으로써 카텔란은 금속 조립, 절단 및 용접에 익숙해진다. 그 후 산업 기술 학원에 진학하지만,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졸업을 기다리면서 일련의 임시직에 종사하게 되는데, 정원사, 웨이터, 안테나 오퍼레이터, 우체부 등의 일을 하다 간호 과정을 마친 후 간호사가 된다. 

 

간호사로 일하던 카텔란은 어느 날 우연히 갤러리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작품에 시선을 빼앗기는데, 그가 시선을 빼앗긴 작품은 일상과 예술을 통합해 표현하는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의 작품이었고, 갤러리 직원에게 이게 무어냐 물었다 한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

 

갤러리 직원은 그에게 미술에 관심이 있냐며 물으며 미술사 책을 한 권 건네주었고 카텔란은 그 후 그의 첫 작품을 구상하며 계속해서 금속을 자르고 용접하며 자신의 작품 사진을 전 세계 갤러리에 보낸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첫 번째 갤러리는 볼로냐의 네온(Neon)이었다. 

 

이처럼 그의 예술가로서 삶의 시작은 우연한 계기로 만난 피스톨레토의 작품과 미술사 책 한 권으로 시작되었지만, 우연히 접한 예술사 책과 피스톨레토 작품이 지니는 일상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카텔란은 장난기 가득한 자유로운 영혼을 바탕으로 그의 조형물이 던지는 메시지 또한 일상적인 것을 시각적 독창성으로 풀어내며 관람자가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만드는 직관적 서사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그의 작품이 가지는 매우 뛰어난 직관적 서사 능력으로 인해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분명 순수 현대 예술가이지만 그의 예술적 서사에 우리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이 백 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대중에게 기억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현재 그의 작품은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힙한 이슈 중 하나이다.   현대 예술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카텔란을 만나면 누군가는 분명 발칙한 상상력과 예술적 영감을 받을 수 있다.

 

미술사 책 한 권으로 세상에서 가장 게으르고 부유한 작가가 된 카텔란을 만나 보는 경험은 그의 작품처럼 꽤 유쾌할 것 같다. 재밌는 점은 서울에서 열리는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이지만 그는 한국에 오지 않았다. 역시 게으른 카텔란이다.  그와 오랜 협력을 해오고 있는 큐레이터인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가 그를 대신해 한국을 찾았고, 카텔란은 또다시 손도 안 대고 코를 풀며, 부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