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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학의 문화 노트] “예술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었던 고대 그리스 사회”

예술은 먹고 사는데 매우 직접적이다

K-Classic News  황순학 교수 | 

 

 

“인간이 아름다움(美)에 노출될 때, 그의 영혼에 선(善)이 들어온다!” - 플라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 사건 사고를 다루는 사회면 뉴스를 접하기가 겁날 정도이다. 특히 예전엔 감히 상상도 못 할 잔인한 폭력들이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 같아 무척 걱정이 든다. 어쩌다가 동방예의지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는지 개탄스럽다.  예술인으로서 생각해 보자면 예술의 부재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 때다. 어느 날 밤에 아파트 수위 분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고는 불을 꺼달라고 부탁했다. 그 이유인즉슨 한 남자가 프러포즈하려고 악단과 함께 왔는데 상대 여성 집의 베란다 등만 켜져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아파트 수위 분에게는 이런 일이 다반사였는지 나에게 무덤덤하게 말을 건넸다. 잠시 후 악단의 반주가 시작되고 그가 세레나데를 시작하자 상대 여성이 불 켜진 베란다로 홀로 나와 감동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세레나데가 끝나자 그를 향해 단숨에 달려 나왔다.

 

그러자 동네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키스해!” “키스해!”를 연호했다. 그런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게 기억된다. 생각해 보면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함 파는 함진아비의 목소리는 듣기도 어렵거니와 아파트 민원을 발생시킬 수 있어 실행하기가 무척 힘들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 밤의 경험이 더욱 아름답게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파트에서 사는 동안 이후에도 그런 일은 종종 벌어졌고 세레나데가 들리면 수위분이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자연스럽게 불을 껐다. 현재 데이트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아름다움을 꿈꾸기 힘들어진 이유 중 하나가 중고등학교 음악, 미술, 체육 시간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즉 예술과 스포츠의 부재로 우리 사회는 더욱 고독한 사회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스스로 반문해 볼 필요가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에 고대 그리스인들의 아름다움 즉 예술에 관한 독특한 사고와 인식을 알아보면서 우리 사회 예술의 부재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하다. 

 

             오페라 '팔리아치'(광대)에 나오는 세레나데   

         * 페페(아를레키노)가 넷다(콜롬비나)에게 남편이 없는 사이 세레나데를 불러 유혹하는 장면. 

         매우 아름다운 세레나데로 달콤하다.  

 

“최고의 기술에는 예술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기술과 예술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어 예술은 밥 먹고 사는 것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강한 나머지 수능이라는 일생일대 첫 번째 관문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프랑스 대입 시험 바칼로레아는 제시 문제 3개 중 1개를 골라서 4시간 동안 15쪽을 작성한다. 철학과 예술 과목을 포함한 15개 과목 모두 주관식 논술이며, 수험생들은 일주일간 시험을 보고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이면 시험에 통과하고, 시험에 통과하면 점수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국,공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잠깐 지면 관계상 예술 관련 문제 중 몇 개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예술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2. 예술 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3. 예술작품에 대한 감수성은 교육이 요구되는가?

4. 인간은 왜 미에 반응하는가?

5. 삶이 아름다웠더라도 예술은 존재했을까?

 

우리 고등학생들로서는 평소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하는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문화 강국이자 기술 강국이기도 한 프랑스는 왜 이런 문제들을 중요시할까? 유럽 사회가 갖는 예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다웠더라도 예술은 존재했을까?”

 

우리와 다르게 유럽의 역사에서 기술과 예술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공존하게 된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문화와 예술의 본향이자 그 근간을 마련한 고대 그리스는 일찍이 신석기시대부터 농경문화를 건설한 동양과는 다르게 척박한 자연환경이었다. 돌산으로 가득한 고대 그리스는 농경지가 턱없이 부족한 나머지 생존을 위해 바다로 진출해 지중해에 자신들의 무역 거점 도시인 폴리스를 건설하며 농경이 아닌 해양 도시 국가로 건설하며 성장해 나간다. 즉 그래도 먹을거리가 있었던 동양의 농경 사회와 비교해 고대 그리스는 상대적으로 배가 고픈 삶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교역을 위해 제작되는 물품들이 잘 팔려나가야만 배고픔이 해결된다는 생각에 신전을 찾아 인간이 좋아하는 아름다움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신에게 물어보는 신탁을 거행하게 된다. 이에 신은 “가장 올바른 것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신탁을 내놓는다.  이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ne)와 아가토스(Agathos), 그리고 칼로스(Kalos)와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美)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해야만 총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신탁 내용을 풀이하면, 고대 그리스어에서 내면적 아름다움을 뜻하는 아가토스(Agathos)는 기술을 뜻하는 테크네(Tecne)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최고의 기술은 외면적 아름다움을 뜻하는 칼로스(Kalos)까지 충족해야만 고대 그리스어로 최종적 아름다움을 뜻하는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아가토스(Agathos)와 칼로스(Kalos)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칼로카티아(Kalokagathia)가 갖는 아름다움에 인간은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신이 신탁을 통해 인간에게 알려준 것이다. 이후 고대 그리스 사회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분야에서 최종적 아름다움인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를 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고대 그리스가 만들어내는 모든 물품은 예술이라 칭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예술적이었기에 예술이란 단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 예술이 일상인 사회로 성장해 나간 것이다.                      

 

즉, 예술은 먹고사는 것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다르게 유럽은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는 기술이 배고픔을 해결한다는 믿음에 예술을 매우 숭상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이에 반해 농경문화로 인해 서양보다 비교적 배가 불렀던 동양 사회에서는 고대 그리스처럼 무언가를 팔아야 하는 처지가 아니었던 관계로, 예술에서 외면의 화려함 즉 칼로스(Kalos)는 껍데기로 치부되며 도외시되어 왔다. 이런 이유로 동양 예술은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세속적 사회나 고도의 기술 문명 사회 안에서는 동화될 수 없는 매우 순수하고 숭고한 방향을 유지하며 기술과 완벽히 따로 구분되었고, 정신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양 예술이 추구하는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美) 기술(테크네,Techne)을 기반으로 내면적 아름다움인 아가토스(Agathos)를 달성하고 이에 더해 외면적 아름다움인 칼로스(kalos)를 함께 추구해야 최종적 아름다움인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에 도달한다는 매우 독특한 미학적 사고로 전개되어왔다는 점에서 내면적 아름다움을 더 중요시했던 동양 예술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다음의 수메르인의 수레바퀴와 조선 시대 수레 그리고 영국 왕실의 마차가 동서양 예술의 서로 다른 방향성을 잘 설명한다. 그림입니다.

 

 

[그림 설명] 왼쪽부터 기원전 수메르인의 수레바퀴, 조선 시대 수레, 영국 왕실 마차.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레바퀴를 최초로 발명한 이들은 기원전 3,800년 경 수메르인들로 알려져 있다. 이후 약 5천 년의 세월이 지난 조선 시대 수레의 외형을 살펴보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외면 장식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모습으로 기원전 수메르인의 수레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즉 수레의 본질 그러니까 이동 수단이 갖추어야 할 기능성 (내면적 아름다움, Agathos))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사실이 확인된다. 하지만, 영국 왕실의 마차는 수레가 갖추어야 할 본질인 이동을 위한 기능성(내면적 아름다움, Agathos)에서도 타이어와 정교한 서스펜션까지 장착되어 있어 조선 수레의 기능성을 뛰어넘고 있다. 즉 기술적 완성도(테크네, Techne)가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기술적 기능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적 완성도(외면적 아름다움; Kalos)까지 달성하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영국 왕실 마차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은 빈 수레도 장식이 화려해지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되고, 아름다움에 이끌려 사람이 올라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해 더는 빈 수레가 아닌 사람들로 가득 찬 수레로 변모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즉, 예술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기원전부터 뼛속 깊이 인식해 오고 있었다는 점이 우리와 크게 다른 것이다.

즉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선 제품의 기능성과 함께 심미성(예술)까지 생각해야 인간이 그 제품에 빠르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유럽인들은 기원전부터 인식해 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기술과 예술의 융합은 서구의 역사에서 이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善하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아름다움에 관한 과도할 정도의 집착은 ‘프리네 재판’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도 확인된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 ‘프리네’라는 ‘헤타이라(고급 매춘부, 단순히 몸만 파는 여자는 ‘포르노이’라 불렀다)’가 있었다. 프리네의 미모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당대 최고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는 남자 누드 조각만 만든다는 당시의 관행을 깨고 ‘프리네’를 모델로 삼아 그리스 최초의 여자 누드 조각상을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프리네’의 이런 아름다움은 화를 부르게 되는데, 에우티아스라는 권력자가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거절당하고, 이에 앙심을 품은 에우티아스는 그녀가 포세이돈 축제에서 열린 ‘엘레우시스’ 신비극에서 알몸으로 아프로디테 역할로 출연한 점을 빌미로 그녀에게 신성 모독죄를 씌워 죽이려 한다. 당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신성 모독죄는 사형이었다. 

 

이런 이유로 재판정에 서게 된 ‘프리네’를 히페리데스가 적극적으로 변호를 하지만, 배심원으로부터 무죄를 받아내지는 못하게 된다. 결국 히페리데스는 마지막 선택으로 배심원 앞에 선 ‘프리네’의 옷을 벗겨버린다. 그리고는 “프락시텔레스도 인정한 완벽한 미인을 죽여야 하는가?”라며 최후 변론을 한다. 그러자 프리네의 아름다운 알몸을 보게 된 배심원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신이 빚은 완벽한 미인에게 사람이 만들어낸 법은 효력이 없다.” 그리고 “아름다움(美, Kalos)은 선(善,agathos)이다!”라 외치며 무죄를 선언한다.

 

 <아테네 법정에 선 프리네>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e, 1861)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미(美, kalos)와 선(善, agathos)이 같이 있어야만, 최종적 아름다움인 칼로카티아((美:Kalokagathia)가 달성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려질 수 있는 판결이었다. 이처럼 기원전 4세기에 있었던 ‘프리네 재판’은 얼마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미를 숭상했으며, 아름다움(예술)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그들의 확고했던 미의식이 잘 드러난다. 

 

음악, 미술 수업 중시하는 유럽의 교육, 한국은 거꾸로 폐지 

 

“유럽 교육 문화에서 음악, 미술 수업은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예술에 관한 독특한 사고와 인식은 여전히 유럽의 교육 환경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럽의 교육 문화에서는 음악 수업과 국어 수업 그리고 미술 수업과 수학 수업이 융합되어 있어 각각 두 명의 선생님이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 이런 교육 환경인지라 프랑스 대입 시험 바칼로레아에서 예술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다. 음악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무지케(Musike)는 뮤즈들의 언어를 뜻하기에 국어 수업과 개연성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 1999년 당시 40년 동안이나 세계 수학계의 미해결 문제였던 ‘라자스펠트예상’을 증명해낸 황준묵 교수는 수학적 문제들을‘예쁜 그림’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순수 수학의 기하학적 결과들은 미술작품과도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푼 문제들은 참 예쁜 그림들이었어요.” “말하자면 이전까지 모르고 있던 예쁜 그림을 제가 찾아낸 셈이지요.” 

 

그의 아버지는 가야금 명인이셨던 황병기 선생님이며 그의 어머니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던 한말숙 선생님이다. 음악가와 문학가가 만나 수학자가 만들어지고 미술로 수학을 풀어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 환경에서 음악이나 미술 수업은 대부분 수능 준비를 위한 자습으로 대체되고 있는 점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예술적 감수성과 철학이 없는 사회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요즘의 뉴스 사회면 기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과거 무척 배가 고팠던 우리의 7~80년대 시절에도 음악, 미술 수업은 자습 시간은 아니었다. 그 여력으로 경제가 부흥할 수 있는 저변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시절 모 방송국의 대학가곡제도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기술 문명의 발전에 힘입어 빠르게 변화는 세상에서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역사적으로 최고의 기술들 속에는 늘 최고의 예술이 함께 깃들어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술은 밥 먹고 사는 것과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럽 사회가 생산해 내는 고부가가치 제품들에 속절없이 지갑을 열고 있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을 아름다움인 최고의 기술은 예술과 함께 해야 비로소 만들어지며, 그런 예술적인 기술들이 우리의 미래 먹을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해 더는 예술을 도외시하지 않는 사회로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 

 

모네의 정원